끓는 기름이 얼굴에 튀었을 때
- 얼굴 2도 화상
어느덧 몇 년 전이지만, 어느날 떡볶이 떡을 뭔가 새로운 요리법으로 먹고 싶었죠. 그쯤에 요리영상이 유행하던 때라, 검색하니 기름에 떡을 튀기는 것이 나오더군요. 적은 양의 기름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영상을 다 보는 것이 귀찮아서 그런 부분은 넘기고 넘겨서 끝부분만 보고 앗, 이것이다 하고 냉장고에 있던 떡볶이용 떡을 튀기고 싶어졌죠.
그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하나 사먹으면 될 것을...... 팥 도너츠를 만들었다가 실패하기도 했고 그래서 식용유를 많이 부어놓은 것이 냄비에 남아 있었죠. 식용유는 옥수수유였던 듯 합니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서 신이 있기는 개뿔이겠지하는 룰루랄라한 기분으로 달구어진 기름에 떡을 넣었죠. 운수 좋은 날에서 김첨지가 오늘따라 운수가 좋더라하는 것처럼 그날따라 이유없이 기분이 좋았답니다.
달구어진 기름에 떡볶이용 길다란 떡을 넣고 몇 분 지나서 꺼낼 시간이 된 즈음에, 어쩐지 좀 떡이 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왔죠. 그래서, 가스렌지 조절버튼을 평상시와 다르게 조금은 렌지와 거리를 두기 위해 팔을 쭈욱 편 상태에서 가스렌지 버튼을 off상태로 돌렸답니다. 가스불이 꺼지자마자 동시에 냄비에서 끓던 기름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튀어올라 얼굴 아랫부분을 파도처럼 혹은 손수건처럼 찰싹 때리더군요. 그 순간에 아, 하느님 잔인하십니다. 이 말이 머리에 떠오르고.....
조금 전의 거만한 룰루랄라는 20분도 안되어서 사라져버리고, 핑거 스냅으로 손가락 두개를 탁 부딪쳐서 어제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몇 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얼굴을 철썩 쳤던 끓는 기름이 그 순간에는 그다지 뜨겁지 않았어요. 정말 얼굴을 데었을까 하는 착각이 맴돌고.... 운이 좋아서 많이 안다쳤겠지 이런 긍정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끓는 기름이 튀었는데, 왜 이렇게 안아픈 것일까 이런 생각을 했죠. 뜨거운 기름에도 이렇게 견뎌내는 내 피부는 무척 강하고 좋은 건가. 강철같은 피부인가~~.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아주 대단한 착각이었죠.) 통증이 없는데, 물에 식힐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도 잠시 했었던 듯 합니다.
나중에 여러 글을 읽어보니, 심하게 다칠수록 통증이 없는 것인가 보더군요. 오히려 통증이 있는 것이 가벼운 화상이라고.
통증은 없었지만, 우선 얼굴에 묻은 기름을 씻기 위해 세수비누로 얼굴을 씻었죠. 그러다가 무료 와이파이가 잡히길래 연결해서 검색을 해보니 얼음으로 식히라고 나오더군요. 비닐에 얼음을 몇 조각 담아서 입 아랫부분의 턱에 대니, 잠시 후에 찢어진 피부 표피가 들떠오릅니다. 찢어지고 들떠올라서 엉망이 된 얼굴피부를 보니 쏟아지는 눈물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때야, 확실하게 화상입었다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했죠.
언젠가 소설 책에서 본 어둠의 세계와 빛의 세계가 생각나고, 이제까지 빛도 어둠도 아닌 어정쩡한 곳에 속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과거의 삶이 빛의 세계였다면 앞으로는 암흑, 어둠의 세계가 내가 속한 세계가 되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동안 무엇을 배웠나 싶어지고.... 얼굴에 끓는 기름이 튄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막막함.
시골 친척집에 일 도와주러 가신 식구 중 한 분에게 끓는 기름이 제 얼굴에 튀었다고 전화하니, 조심하지 그랬냐고 하십니다. 나중에 전화와서, 알로에를 발라봐라, 감자를 갈아서 붙여봐라...... 이름만 들어봤지, 얼굴은 잘 모르겠는 시골 아짐(?)들 몇몇의 목소리도 전화상 약간 멀리 들려옵니다. 누구 아짐이 말하시는데, 감자 갈아서 바르면 좋다고 한다.....
전화를 받는 제 마음은 더 무거워집니다. 저도 그런 것 발라서 나을 수 있는 상태면 좋겠는데, 지금 이 상처는 그것으로는 안될 것 같은데......... 나는 어찌할 줄 모르겠고 절망적인데, 전화로 들려오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평온합니다.
내가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 들고.... 나는 심각한데, 다들 심각하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순식간에 저들과 동떨어져버린 느낌. 얼굴 화상입었다고 말했는데, 다들 바빠서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마스크, 모자쓰고 마중 나가서 식구 중 한 사람의 여행 짐들고 와서 집에서 제 마스크를 벗고나니, 딱지 떨어져 나가고 얼굴 아랫부분이 붉게 상처자국으로 넓게 퍼져있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 하셨죠. 이렇게 많이 다친 줄 몰랐다고.....
내 목소리 때문인가...
나, 화상당했어... 해도 다들 평온한 미소짓는 목소리다. 어쩌다가, 껄껄....
아니면, 기름이 몇 방울 얼굴에 튄 정도이겠거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고...
어차피, 자기 일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고.... 처음으로 화상 얘기를 꺼냈을때, 다들 심각하지 않은 답들이다.
전에도 아팠을때 걱정했는데, 잘 낫더라. 이번에도 잘 낫겠지.
욥의 친구들처럼, 비판적이기까지 한 사람도......
전화로 들었을 때는 기름에 몇 방울 튀었겠거니 생각될 뿐이었는데, 쟤가 무슨 병원을 가고 유난히 호들갑을 피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뭐....
다들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을 못하는 거다.
나도 그 순간에 정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구나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으니까.
주위 사람중에서 낯바닥을 많이 데어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이러셨죠.
낯바닥......참 오랜만에 듣는 단어.
병에 대한 체감은 10대때 받는 느낌이 다르고, 20대 ,30대,40대~70대,80대에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지는 건가 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저런 질환을 접하다보면 같은 증상이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더군요.
여하튼, 그때 눈물을 꾹꾹 참고 다시 검색을 하니, 얼음으로 하면 안되는 것이고 찬물에 식히라고 나오더군요.
손에 쥐고 있던 비닐봉투에 담아진 얼음을 바닥에 버리고 수돗물을 받아 놓으면서, 얼굴을 계속 연거푸 대야에 담근 후에 거울을 보니 들떠올랐던 턱 부분의 피부 표피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피부 살 윗부분이 가라앉았더군요. 119에 전화걸어봐야 되나 이런 생각도 했다가, 팔다리 멀쩡한데 민폐일듯 하고..... 들떠올랐던 얼굴 살이 가라앉으니, 금세 병원에 안가도 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그때 제가 화상검색을 부탁했던 주변 사람이 화상에 좋다는 연고 사러 약국에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전화가 와서 그럴까 솔깃해져서 약국에 가니, 약사가 얼굴이니까 병원가는 것이 좋겠다고. 어디로 가야할까요 물으니, 얼굴이니 성형외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약국 위층에 성형외과가 있기에 올라가서, 정말 여기에서 화상 치료 하나요 물으니 한다고 하더군요.
병원 접수처에서 주민등록 번호, 주소, 전화번호를 적는데 얼굴이 활활 불타오르는 느낌이 들어서 손으로 부채질을 연거푸 했죠. 지옥에서 불타는 고통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작열감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운데, 인적사항을 적어야 진료를 본다는 현실..... 약국에 갔을 때만 해도 이런 통증은 없었는데, 그 후 시간이 좀 흐르니 통증이 밀려왔죠. 이제야 생각해보면 수건에 찬물이라도 적셔서 얼굴을 감싸고 병원에 갔어야 했던 것이었는데, 그때는 몰랐었죠.
얼음을 비닐봉지에 넣어서 얼굴에 대고, 얼음을 있는 그대로 얼굴에 문대지 않아서 그나마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얼음은 화상에 좀 그렇더군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상 피부와 달리 화상을 입은 피부가 부푸는 것을 봤었죠. 지나치게 차가운 얼음을 중단하고, 찬물에 얼굴을 담그니 열기가 얼음물에 담갔을때보다 훨씬 잘 빠져나가고 정상 피부와 이질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얼굴의 피부가 고루 평평해졌던 듯 합니다.
정말 얼굴의 살들이 약간씩 하얗게 부풀어지는 것을 볼때 짧은 순간이지만,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충격이었죠.
다급한 마음에 수돗물을 틀어놓고, 큰 바가지에 찬물을 계속 교체해가면서 얼굴을 담그다가 빼서 거울을 보니 다시 얼굴 피부가 평평해져서 안심..... 어느 정도까지 물로 식혀야 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해서, 부풀어 오른 얼굴 피부가 평평해질때까지 물을 교체해 가면서 찬물에 담갔어요. 얼굴의 한 부위가 아니고, 여러 부위라서 담그고 있는 것이 더 나았죠. 그렇게하고 난 후, 그때는 정말 얼굴상태가 괜찮다고 생각이 되었답니다.
그러다가, 약국으로 갔는데.... 그때의 얼굴 상태는 어떠했는지 모르겠네요. 물에 식힌 얼굴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얼굴에서 열이 나서 혼날 지경이었는데.....
언젠가 성직자이신 분이 지옥에 대한 제 생각을 물으셨었죠. 어느덧 오래되어서 질문의 상세적인 내용은 생각이 안나지만....
신이 지옥에 가라고 한다면, 신의 뜻이니까 지옥도 달갑게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죠. 어쩌면 내심 아직 그 경지를 깨닫지 못하셨냐는 오만불손한 생각이 담긴 답변이었는지 모릅니다. 끓는 기름이 튀었던 자리의 얼굴이 활활 타오르는 고통이 느껴지니 그때의 그 답변이 후회가 됩니다. 내가 무슨 성인군자가 되겠다고.....지옥같은 고통은 받고 싶지 않고, 피할 수 있는 한 피하고 사후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지옥도 거부할 수 있는 한 거부하고 도망가는 좀팽이, 쫌생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간호사가 얼굴에 뭔가를 바르더니 눈 아래 입부위를 제외하고 얼굴 볼의 오른쪽은 아랫부위, 왼쪽의 볼부위는 거의 대부분, 턱 부위를 넓은 밴드로 덮어줍니다. 더운 여름날 날씨에 6일 정도는 세수,머리감는 것도 금지였든가. 치료 중에는 눈을 감고 있어서 뭔가 바르는 것만 알지,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못 봤습니다. 며칠동안을 계속 입부근 표피도 뜯어내고 뭔가 바르고 밴드로 덮더군요. 어느날 눈을 떠서 보니까, 투명한 연고 여하튼 그런 것을 바르고 난 후에 두툼한 메디폼을 화상 부위에 붙이더군요.
참고로, 그 이후 언제인가 두꺼운 메디폼을 구입해볼까 하고, 주변 약국 여러 군데를 가봤는데 파는 곳이 없더군요. 얇은 메디폼 비슷한 다른 제품은 있어도.... 약국에는 두꺼운 메디폼 유사품도 구비해 놓은 것이 없더군요.
물이 화상상처 부위에 닿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양치질은 해야 할 듯 하여 치약은 안묻히고, 칫솔로만 이를 닦고 빨대로 입은 헹궈줬답니다.
병원에 오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부위를 어떻게 알고 간호사가 이마쪽에 방울방울 기름이 튄 부위에도 뭔가를 바르기는 하더군요. 안경이 있어서 안경은 식용유로 범벅이 되고, 눈쪽은 기름이 튀지 않았죠. 안경을 써서 천만다행이었다고나 할까. 가스불을 끄면서 주욱 내밀었던 팔 아랫부분도 두 군데 작게, 목 부분도 두 군데 정도 작게 기름 방울이 튀어있었더군요. 그곳은 기름방울이 튀었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뭔가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 놓습니다. 병원 가기 전에 코와 입술도 화끈거렸는데, 그 부위는 약을 바른지 몇 분만에 붉은 기가 사라져 보입니다. 엉덩이에 주사도 맞고, 약도 며칠 분 처방해줘서 먹었죠. 파상풍 주사를 근래에 맞은 적이 있냐고 물어보고, 켈로이드 체질인지 아닌지도 물어보더군요. 그때, 파상풍 주사를 맞았나 봅니다.
의사에게 흉터 남을까요 물어보니 2도 화상 정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하루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겠다고. 이제는 화상 부위에 물이 닿으면 안되고... 첫날 치료를 하면서 의사나 간호사가 다음날 꼭 치료받으러 병원에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밴드를 붙여 놓고도 작열감이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니, 얼음을 직접은 대면 안되고 두툼한 수건에 감싸서 얼굴에 대고 있어도 된다고 했던 듯 합니다. 밴드에 물기남게 하지 말고...
병원 접수하는 곳에서 치료비를 받으면서, 화상 치료비는 비싸다고 말해줬죠. 다음날 밴드를 붙이던 간호사는 얼굴에 붕대 안감고, 밴드 붙인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그 무렵에 찍은 사진을 보니, 화상 입은 후 얼굴이 평상시보다 더 부어 있었네요.
그때 검색해 보니, 가래떡을 튀기는 일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고 나오더군요. 큰 가래떡이 아닌 그나마 떡볶이용 떡이어서 이 정도인가..... 냉동실 떡 아니었고, 냉장실에 있던 떡이었죠. 나중에 보니, 떡볶이용 떡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답니다. 가스불을 끄려는 순간 기름방울만 튄 것이 아니라, 넓은 천으로 문지르기라도 하듯이 떡이 나의 얼굴을 철퍼덕 때렸었나 봅니다.
그때는 떡이 얼굴을 쳤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단지 기름만 튀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몇 개월이 지난 후에야 얼굴에 상처가 생긴 가로 방향의 두 줄, 입부근의 동그란 모양이 떡볶이용 떡이었겠다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끓는 식용유가 튈 때에 그 식용유가 가스불에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요즘에야 듭니다.
율리시스 이야기가 1904년 6월 16일 하루 이야기라는데, 화상을 입은 6월 1일의 하루가 예전의 날과는 다른 날로 느껴졌죠. 병원에서 날마다 치료를 받았는데, 2-3일이 지나서 의사가 거울을 주고 얼굴을 보라고 하더군요.
아...... 이런 상태일 줄이야. 입술 한쪽 끝은 망가져 있고, 볼 부분 일부까지 둥그렇게 갈색으로, 한쪽 얼굴의 볼은 가래떡 자국인지 길게 두줄 그어져 있고.... 입 아래쪽 턱에도 타원형으로 넓게 갈색으로..... 턱 아래로는 식용유가 흘러내린 자국이 약간 있고. ( 어느정도 다쳤는지 무척 궁금하기는 했지만, 간호사가 감염우려가 있다고 했든가 여하튼 붙여놓은 밴드 뜯지 마라고 해서 얼굴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있었죠. )
화상 몇 도쯤 될까요 물어보니, 의사는 표재성 2도 화상쯤이라고 말해주더군요. 흉터 남을까요 물어보니 흉터는 안생길 듯 한데, 한달 지난 후에 레이저 치료가 필요하면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간호사가 자꾸 이틀 연속 왼쪽 입술 끝에 밥알이 끼었다고 제거했었는데, 입안 상피세포였든지 입부위 표피였을텐데 자꾸 밥알이라고 한 듯 합니다. 간호사는 제가 양치질을 안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인지, 자꾸 밥알이라고 하더군요. 휴.... 물없이 칫솔로 양치질하고 물을 빨대로 흡입해서 헹구고 있었는데 말이죠. 제가 아니라고 해도 자꾸 밥알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가봐요 라고 답해줄 수 밖에 없더군요. 빨대로 조심해서 양치질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구차스럽고........
밴드를 제거하고 난 후, 저녁에 거울을 보니... 치료 중에 다친 한쪽 입술 끝에 자꾸 하얀 것이 생기더니 화상으로 모양이 망가졌던 입술 끝이 다시 제 모양을 자기 스스로 만들고 있었죠.
병원에서 밴드를 푼 날, 너무 기쁜 나머지 깜박 마스크를 안쓰고 접수처에 치료비를 납부하려고 가니, 접수처의 여자분이 제 얼굴을 보고 엄청 놀랍니다. 며칠 전, 처음 와서 접수할 때에 이렇게 많이 다친 줄 몰랐었다고 말합니다. 어쩌다 이렇게 다쳤냐고 물어 봅니다.
기름이 튀었던 그 날, 저도 많이 안다쳤을 것이라는 착각에 하마터면 병원에 안갈 뻔 했었죠. 화상은 2-3일 지나야 어느 정도 다쳤는지 제대로 파악이 되는 것이더군요.
동네 약사분이 얼굴이니까, 그때 당장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고 말해줬던 것이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그런 말 안들었으면 괜찮겠거니 하고, 연고나 사서 집으로 돌아갔을 테니까요.
기름이 얼굴에 튀었을때 물로 씻고, 세수비누로 기름을 닦은 후에 예전에 사놓은 연고를 찾았답니다.
그 화상 연고를 바르면 되겠지 싶어서......그런데, 묘하게 못 찾았습니다. 얼른 눈에 띄지 않아서, 그냥 하나 더 사야겠다 싶어서 약국에 갔는데....
약국에 가기를 잘했습니다. 연고를 찾았더라면, 제 얼굴이 어떤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에 그 연고를 얼굴에 치덕치덕 발라놓고 안심했을 수도....
5일이 지나서 밴드를 푸니 마냥 기쁘기만 했답니다. 저녁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입에 넣었는데, 수저가 입에 안들어갑니다. 도시락용 작은 수저는 입에 들어가는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저가 제 입이 안벌어져서 안들어갑니다. 언젠가 TV에서 화상환자가 나와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을 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어쩌다가 저런 일이.......어휴, 나에게는 저런 일이 없을 거야 속으로 뇌까렸던 나를 돌아보며 후회합니다. 그동안은 볼과 턱 아래에 밴드가 붙여져 있고, 입술 한쪽도 상처가 생겨서 나아가는 중이었기에 입을 벌리기 힘들어서 작은 수저를 사용했었죠. 입술 끝쪽 부분이 아닌 입술 부분 화상은 금방 좋아지더군요. ( 걷는 운동을 해도 잘 안빠지던 체중이 입부근을 다쳐서 음식을 먹기가 힘들어서 적게 먹으니 4-5일만에 4kg정도 감량이 되더군요.)
밴드만 떼어내면 바로 평상시의 밥수저가 입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수저가 입에 안들어가니, 걱정과 눈물이 흐르는데 어디 물어볼 곳도 없습니다. 다음은 휴일에 주말이고..... 검색해봐도 표재성 2도 화상에 수저 안들어가는 상황 이런 글은 없습니다. 심한 화상으로 입이 작아지는 소구증에 대한 글은 있더군요.
작은 숟가락이나 앞부분이 좁은 숟가락은 입에 들어가지만 앞부분이 조금 큰 성인 숟가락은 입에 넣기가 힘들었죠.
그리고, 아를 벌리기도 힘들고......아를 못 하니, 치과 치료도 받기 힘들게 되는 건가, 조금이라도 큰 음식은 잘라먹어야 하는 것인가 이런 불안이 엄습해왔죠. 그래서, 거울을 보니......거울을 보고 든 느낌은 이것은 내 입술이 아니다. 입술이 작아진 느낌이랄까...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하지만, 양쪽 입술끝이 > < 이렇게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고, 입술의 가로 길이가 예전에 비해 짧은 느낌이 들었죠.
이렇게 시간이 흘러, 그대로 나의 입술과 볼이 이렇게 굳어져 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억지로 입을 억지로 크게 벌리는 연습을 했더니 얼굴 화상부위의 딱지가 산산조각이 난 채로 붙어 있습니다. 수저를 입에 넣어보니 이제야 들어갑니다.
너무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거울로 얼굴을 살펴보니 입을 억지로 크게 늘려지게 벌이다보니 팔자주름 생기는 부위의 피부가 살짝 벌어진 것이 보입니다. 몇 시간만에 아.....다시 낙담. 이제 뭔가 얼굴 균형도 틀어져 보이고, 웃을 때면 뭔가 좌우 균형도 안맞아 보이고....
제가 억지 발음 연습을 해서인지 얼굴살이 세로로 좀 길게 약간 벌어졌죠. 입술 옆 부위는 다른 곳보다 더 벌어져서 무슨 얕은 보조개처럼 움푹 패여보이고... 좀 더 기다릴것을 성급하게 무슨 발음연습한답시고 설쳐서 볼살이 패였다 싶기도 하고 뭐하러 이런 짓을 했나 싶기도 했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저는 신경이 좀 쓰이더군요. 전에 입술 윗부분이 살짝 그을려졌길래 하룻만에 그을려졌다고 식구에게 말하니 모르겠다고 하기는 하더군요. 그날 병원에 갔을때, 의사는 말안했는데도 금세 알아차리고 지적하던데.....
6개월이 지나니 벌어진 얼굴살이 많이 메꿔지고, 얼굴 한쪽의 팔자주름지는 이 부위가 살이 벌어져서 좌우균형도 좀 안맞는듯하고 이상하다 싶더니, 점점 균형도 맞아지고... 턱은 늦게까지 살이 붉은 듯 하면서도 약간은 거무스레한 색깔도 띄다가, 이 부위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면서 좋아졌답니다.
화상까페에 이런 것에 대해 글을 올렸더니, 표재성 2도 화상이면 근육 손상이 없을텐데 좀 더 기다려보지 그랬냐는 글도 올라오더군요.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그래도 얼굴 피부가 제일 잘 나을 수 있는 곳이라고 알려주더군요.
연휴, 주말이 지나고 병원에 가니 (딱지라고 하나요, 여하튼 그것이 ) 산산조각이 나 있으니 그냥 그날 떼어버리자고 하더군요. 딱지가 자외선 차단을 해주면서 나아지는 모양인데, 제가 방정을 떨어서.....
1-2주 무렵에는 치료 잘 받으면 잘 낫겠지 이런 막연한 낙관적 생각이었는데, 3주가 되면서부터는 과연 이 얼굴피부가 전처럼 될 수 있을까 이런 걱정과 두려움이 들더군요. 2주 병원 치료후에 며칠은 미보연고를 약국에서 사서 바르고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었는데..... 미보연고를 하루에 3번이었나 여하튼 이 연고는 참기름 냄새가 나죠. 참기름 냄새가 나쁘지는 않더군요.
3주 무렵은 우울감에 빠져 병원치료를 빼먹고 미보연고를 바르다가 며칠 지나서 갔더니, 병원 치료는 다 끝났다고.... 연고, 오래 바르는 것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얼굴이 당긴다고 했더니, 세수할 때에 유아용 비누말고 신생아용 물비누를 사용하라고 조언을 하셨죠. 마트에서 사온 유아용 세수비누는 당김이 생겨서 너무 괴로웠는데, 정말 신생아용 물비누를 사용하니, 세수한 후에 생기는 당김이 감소가 되더군요. 세수 후에 피부당김이 덜 느껴지니, 정말 살 것 같았죠.
수분 크림이 좋다고 해서, 적당한 가격의 수분 크림을 사용하고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바세린도 간혹 발라줬죠. 화상이 나은 후에도 몇 달동안은 얼굴의 건조감 때문에 괴로웠죠. 수분크림을 발라서, 얼굴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해줬답니다.
흉터연고는 바르면 좋을까요 했더니, 그다지 권장을 안하시더군요. 전에 다른 부위 꿰맨 후에 흉터연고 발라야 할까요 했더니 그곳에서도 그다지 이러시더군요. 그래서, 흉터 연고는 사용을 안했답니다.
어느날은 바세린을 얼굴에 바르고 해질 무렵쯤에 천변을 거닐었는데, 하루살이 벌레였나 여하튼 그것이 바세린을 바른 얼굴이 찐득거려서인지 제 볼에 주르륵 달라붙어서 못 도망가더군요.
이런 상황이 너무 어이없어서, 괜시리 울컥해지더군요. 화상 치료하고 며칠 지난 후에 의사가 세수해도 되고, 머리감아도 된다고 할 때에 어찌나 기쁘던지......
여하튼 그렇게 걱정을 했지만, 1-2달 지나니 얼굴 피부는 깨끗하게 나았어요. 1-2년 넘게 얼굴 당김은 있더군요. 균형이 안맞아 틀어져 보이는 듯 하던 얼굴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나니 균형이 맞아 보입니다.
자외선이 화상피부에 닿으면 멜라닌 색소가 없어서 거무스레해질 수 있다고 해서 뜨거운 여름에 선크림, 마스크, 모자, 양산쓰고 다녔죠. 화상생긴 것 2-3주 지났을 무렵에 얇은 마스크를 쓴 적이 있었는데, 입술 윗부분 살이 약간 금세 회색빛이 되어 있다고 의사가 알아차리고 지적하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두툼한 면마스크를 하고 다녔답니다. 입 부위, 볼 부위에 상처가 있어서요.
전에는 사람들 얼굴피부를 관심있게 본 적이 없었는데, 이때는 길에 걸어가는 노인분들 얼굴피부를 보며 저 나이에 상처없어 보이는 얼굴이 마냥 부럽습니다. 복 받으셨네요를 입으로 중얼거리며, 저 나이였을 때 내 얼굴 화상상처도 좋아져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길을 터벅터벅 걸었던 적도 있었죠.
상처가 나아가면서 화상부위가 근질근질 하기에 의사에게 물어보니, 그건 좋은 증상이라고 말해줍니다. 나아지려고 그러는 것이라며, 손으로 긁지 마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밤에 잠을 자다가 손으로 얼굴 상처를 긁을까봐 양쪽 손에 면장갑 2개씩을 끼고 손목 부위는 끈으로 둘둘 감고 자기도 했죠. 손에 장갑을 하나만 끼고 자면, 잠결에 긁고 싶어서 금방 벗겨 버리더군요. 그래서, 면 장갑을 한 손에 두개씩 끼워 놓고 잤어요.
손목부분을 끈으로 감아놓으니 장갑이 안빠져서 잠에서 깨게 되고 안긁게 되더군요. 그리고, 얼굴 거무스레하게 될까봐 실내에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옷감파는 사이트에서 조금 어두운 색의 천을 구입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차단시켰습니다.
표재성 2도 화상 치료가 끝나고, 2-3달 후에 본 사람들이 얼굴 피부 좋아졌네 하고, 화상입은 것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전에 TV에 여자분이 나왔었는데, 화상으로 얼굴 피부가 당겨서 고통스럽다고 하셨죠. 그때,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고 주름도 없어보이는데, 무엇이 고통스럽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약간 속으로 투덜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네.....그때 제가 투덜거렸던 비슷한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듣게 되었습니다.
밴드를 풀고 난 후에, 입과 볼이 당기고 먹먹할때 오래전 그 일이 새삼스레 생각이 났었죠. 제가 겪어보지 않았을 때는 알 수가 없었던 그 고통. 그때야 그 분의 심정을 알 수 있었죠. 진심으로....어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고서는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
어차피 이런 것은 자신만의 고통일 뿐. 화상으로 갈색으로 덮였다가 붉은 살이 돋아난 얼굴 상처를 보며 예전처럼 좋아질 수 있을까..... 차라리 보이지 않는 제 뱃속의 내장이 아팠으면 이 심적고통이 덜 하겠다 이런 생각도 하던 적이 있었죠.
시간이 흘러 보니,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장의 병도 참 고약한 것이겠더군요.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지만요.
치료 중일때 전화나 문자가 와서, 얼굴 본 지 오래되었다며 언제 얼굴이나 보자 이렇게 말하면 그 말이 가슴 깊숙이 꽂히더군요. 다른 때는 그런 문자 없었던 듯 한데, 얼굴 화상 치료 중일때 얼굴 한 번 보자 이런 문자가.....
다른 사람에게 나라는 존재를 대표하는 것은 얼굴이었든가, 얼굴, 얼굴이란 무엇이기에.........이런 생각이 들면서 괜시리 서글퍼지더군요.
그해 여름이 꽤나 무더웠는데, 화상치료 이후에도 나은 피부가 거무스레하게 얼룩덜룩 안되도록 자외선 차단을 위해 두툼한 마스크를 쓰고 밖에 다녀야 했죠. 어느날 문득 분식점에서 파는 핫도그가 먹고 싶어서 사러 가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니, 할머니가 기다리는 동안에 오뎅 하나 그냥 공짜로 먹으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말씀은 고맙지만 제가 화상치료후 나아가는 중인데, 오늘 햇빛이 너무 강해서 마스크를 벗고 먹으면 안되겠다고 사양했죠.
먹지는 않았지만, 오뎅 하나를 공짜로 먹으며 기다리라는 할머니 말씀이 고마와서 분식점 가게 바깥에 커다란 기름 냄비를 두고, 튀김을 하시는 할머니께 제가 튀김하실 때에 화상 조심하시라고 했죠. 튀김할 때에 얼굴보호하는 그런 도구도 판매하던데 그것 쓰고 튀기시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얼굴 화상이후로, 많은 양의 기름을 붓는 튀김이라는 요리는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생겼답니다. 깻잎튀김을 하더라도 소량의 기름으로 전 부치듯이 한답니다. 한동안은 생선을 구울때나 전을 부칠 때에는 마스크를 꼭 쓰고 했죠.
그때 응급실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개인병원으로 치료받으러 가야 하는 것인가 이런 고민도 좀 되었었죠. 돌이켜보니, 응급실에서의 얼굴 화상은 저 뒤로 밀려나겠더군요. 빠른 치료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화상으로 죽는 것은 아니기에, 제 얼굴 화상은 뒷차례가 된다는 것을 요즘에야 알았습니다.
https://youtu.be/erIvyX78K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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