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조선 태조때 남대문 명칭 사용되다~.

꿈꾸는가 2014. 5. 28. 19:53
조선 태조때 남대문 명칭 사용되다~.

 

  꽤 몇 해전에, 남대문이라는 것은 일본이 숭례문을 격하시켜서 붙인 명칭이라며, 남대문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둥 이런 신문기사와 글을 보면서......과연 그것이 근거가 있는 말일까 궁금해졌죠.

  그래서,그때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니..... 태조때부터 남대문은 사용되었더군요~.

 

 

태조 10권, 5년(1396 병자 / 명 홍무(洪武) 29년) 9월 24일(기묘) 2번째기사
성 쌓는 일이 끝나자 인부들을 돌려 보내다. 각 문의 이름

 

성 쌓는 역사를 마치고 정부(丁夫)들을 돌려보내었다. 봄철에 쌓은 곳에 물이 솟아나서 무너진 곳이 있으므로, 석성(石城)으로 쌓고 간간(間間)이 토성(土城)을 쌓았다. 운제(雲梯)도 빗물로 인하여 무너진 곳이 있으므로 다시 쌓고, 또 운제(雲梯) 1소(所)를 두어서 수세(水勢)를 나누게 하고, 석성(石城)으로 낮은 데가 있는 데는 더 쌓았다. 또 각문(各門)의 월단 누합(月團樓閤)을 지었다. 정북(正北)은 숙청문(肅淸門), 동북(東北)은 홍화문(弘化門)이니 속칭 동소문(東小門)이라 하고, 정동(正東)은 흥인문(興仁門)이니 속칭 동대문(東大門)이라 하고, 동남(東南)은 광희문(光熙門)이니 속칭 수구문(水口門)이라 하고, 정남(正南)은 숭례문(崇禮門)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하고, 소북(小北)은 소덕문(昭德門)이니, 속칭 서소문(西小門)이라 하고, 정서(正西)는 돈의문(敦義門)이며, 서북(西北)은 창의문(彰義門)이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10권 5장 B면
【영인본】 1책 96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군사-관방(關防) / *건설(建設) / *재정-역(役)

 

 築城役訖, 放丁夫。 其春節所築, 有因水湧頹圯者, 以石城築之, 間以土城; 雲梯爲雨水所衝, 以致圮毁處, 復築之; 又置雲梯一所, 以分水勢, 石城有低下者, 加築之。 又作各門月團樓閤。 正北曰肅淸門, 東北曰弘化門, 俗稱東小門。 正東曰興仁門, 俗稱東大門。 東南曰光熙門, 俗稱水口門。 正南曰崇禮門, 俗稱南大門。 小北曰昭德門, 俗稱西小門。 正西曰敦義門, 西北曰彰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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